— 소개 —
농촌의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난 이주배경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한 사람의 서사에서 시작해 가족, 친구, 이주민으로 뻗어가는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습니다. 대체로 약한 존재들, 사회가 의도적으로 혹은 방임의 형태로 배제하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주민과 이주배경청(소)년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와 지자체가 대대적으로 주도한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의 결과로 우리 사회에는 이미 우리 생각보다 많은 이주민과 이주배경청(소)년이 있습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웃의 이야기를 들으며,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에디터 밑줄 —
어릴 때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 댄스 가수나 화가를 꿈꾸기도 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는 게 재밌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현실에 눈을 떴다. 꿈을 이루기에는 키도 너무 작고 예쁘지도 않고 재능도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우리 집에서 가수나 화가의 꿈을 계속 키울 수 있을까 싶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진로를 정하고 구체적인 장래 희망을 써내야 할 때면 난감했다.
우리 집에 정 같은 것을 붙인 적 없다고 여겨왔는데, 그냥 태어나 보니 우리 집이었다. 아주 어릴 때는 남들도 당연히 다 이런 줄로만 알다가 차츰 다른 집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게 되면서 우리 집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집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나 추억 따위는 없는 줄 알았다. 남기고 싶은 것보다 버리고 싶고 잊고 싶은 것들이 더 많을 줄 알았는데. 부서지고 어긋나고 비뚤어진 옛집을 싹 허물고 반듯하고 깨끗한 새 집을 얻는 것이 마냥 기쁠 줄 알았는데. 눈물이 계속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