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개 —
영화의 배경은 영국 북부 최대의 광산 도시였던 더럼, 석탄산업의 몰락으로 슬럼화되면서 거주민들의 좌절과 불만이 높은 곳이다. 이 도시의 빈집에 시리아 난민들이 입주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거주민들은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을 염려해 인종차별적 언행과 폭력까지 행사하며 그들을 쫓아내고 싶어 한다.
물론 난민들을 돕는 사람들도 있다. 오래된 동네 술집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는 손님이 끊길까 봐 갈등하면서도 내전으로 모든 것을 잃고 이국으로 온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영화는 어느 동네에나 존재할 가장 평범한 얼굴의 혐오를 보여주며 적대를 양산하는 세계를 세공한다.
평행선을 달리는 거주민과 난민들의 갈등 속에서 마침내 난민 소녀 ‘야라’를 비롯한 사람들은 오랫동안 창고로 사용했던 올드 오크의 또 다른 홀을 수리해 급식소를 열기로 한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와서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공간이 생기자 시리아 사람들뿐 아니라 거주민들도 급식소를 찾았고, 그들은 조국을 잃은 난민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가난과 고립 속에 살아가고 있던 영국인들이었다.
광산 노동자 부모 밑에서 자란 TJ는 “굶주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라는 표어 아래 파업을 함께했던 동네 어른들을 떠올리고 현재 삶을 구할 수 있는 건 바로 그런 희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용기, 저항, 연대’라는 그 시절 슬로건이 낡은 것으로 치부되는 건 현실에서의 효용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버려버린 것이라는 자각이다. 힘써서 이뤄야 하는 그런 가치들보다 희생양을 만들어 폭력적으로 소모하는 것이 더 쉬워진 세상이니까. 한국의 요즘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었다.
— 켄 로치, 우리들의 ‘올드 오크’[동아일보/김금회] —
— 에디터 밑줄 —
삶이 힘들 때 우린 희생양을 찾아.
절대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보면서 우리보다 약자를 비난해.
언제나 그들을 탓하지.
약자들의 얼굴에 낙인을 찍는 게 더 쉬우니까.